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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 비빔국수를 먹었어요.

by otsu 2024. 8. 12.

새벽은 항상 묘한 분위기를 품고 있어요. 깜깜한 어둠 속에서 세상이 잠든 것 같지만, 그 정적이 오히려 마음을 깨우기도 하죠. 그런 새벽에 갑자기 생각나는 음식이 있다면, 저는 단연 비빔국수를 꼽고 싶어요. 그 빨간 양념에 탱글탱글한 면발이 서로 얽혀 있는 모습만으로도 이미 입 안에 침이 고이니까요.

 

그날도 어김없이 새벽에 잠이 깨서 잠시 뒤척이다 보니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들렸어요. 밤에 먹은 저녁이 부족했던 건 아닐 텐데, 이상하게도 출출함이 몰려왔어요. 새벽에 먹을 만한 게 뭐가 있을까 생각하던 중 문득 비빔국수가 떠올랐어요. 그 상큼한 양념과 함께 매콤한 맛이 혀끝을 자극하며 온몸을 깨워줄 것만 같았어요.

 

잠이 덜 깬 채로 부엌으로 향했어요. 냉장고를 열어보니 다행히 양념장과 소면, 그리고 고명으로 올릴 채소들이 있었어요. 부엌에서 나는 냄새와 함께 부드럽게 퍼지는 기름진 향기는 마치 나를 더 깊이 끌어들이는 듯했어요. 물을 끓이기 시작하자마자 배고픔이 더욱 더 강렬해졌어요. 그 짧은 시간이 얼마나 길게 느껴지던지, 기다리는 동안 초조함이 밀려왔어요.

 

드디어 물이 끓기 시작하고, 소면을 넣어 휘휘 저었어요. 면발이 물결처럼 부드럽게 퍼지는 걸 보며 조심스럽게 시간을 체크했어요. 너무 익히면 불어서 식감이 떨어지니까요. 알맞게 익힌 면을 찬물에 빠르게 헹구며 탄력 있는 식감을 살려냈어요. 손끝에서 느껴지는 시원한 물의 감촉은 새벽의 차가운 공기와 어우러져 묘한 기분을 들게 했어요.

 

이제 가장 중요한 단계, 양념을 넣을 차례였어요. 미리 준비해 둔 고추장, 간장, 식초, 설탕, 다진 마늘을 적당히 섞어 놓은 양념장을 면발에 얹었어요. 그리고 젓가락으로 조심스럽게 비비기 시작했어요. 양념이 골고루 퍼지면서 면발이 붉게 물들어가는 모습은 언제 봐도 매혹적이에요. 한입 맛을 보니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어요. 새콤달콤하면서도 매콤한 맛이 입안 가득 퍼지며, 잊고 있던 잠이 완전히 달아났어요.

 

고명으로 올린 채소들이 씹히는 식감 또한 별미였어요. 아삭아삭한 오이와 살짝 데친 콩나물이 양념과 어우러져 비빔국수의 맛을 한층 더 풍성하게 해주었어요. 비록 새벽에 혼자 먹는 음식이었지만, 그 순간만큼은 참 만족스러웠어요. 심야의 고요함 속에서 홀로 맛보는 이 기쁨이 어쩌면 비빔국수가 주는 진정한 매력일지도 모르겠어요.

 

식사를 마치고 나니 다시금 찾아온 고요함 속에서 몸과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어요. 배가 채워지니 마음도 채워지는 느낌이었죠. 덕분에 다시 잠자리에 들 때는, 아무리 작은 소리에도 깨어날 것 같던 예민함이 사라졌어요. 아마도 그 매콤한 맛이 불안했던 마음까지도 깨끗이 씻어내 준 게 아닐까 싶어요. 그렇게 저는 비빔국수 한 그릇으로 새벽의 적막을 달래며, 다시 포근한 잠에 빠져들었어요.